2007년도 벌써 7월...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카페 회원님들 사랑하는 분들과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정왕동 오이도역 주변의 볼거리중 8번째로 오랫만에 아주
아름답고 유명한 곳을 소개할까 합니다...
정왕동에는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정왕동이 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중에서 관곡지라고 연꽃 테마파크로 알려진 곳을 소개할까 합니다.
연꽃은 단아한 아름다움과 그 매혹적인 향기는 고급 아로마 테라피로도 사용됩니다.
7월...관곡지 입구에 있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를 했습니다.
관곡지는 하중동 208번지에 위치한 작은 연못으로서 조선 전기의 유명한 관료인 강희맹 선생이
명나라 남경(南京)에서 꽃은 흰데 끝부분만 옅은 붉은 빛을 띠는 전당강(錢塘江)의 연꽃씨를
가져다 심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관곡지에 관한 역사적 유래중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인 1846년에 관곡지를 수리하고 쓴 책이 남아 있어 그 의의를 더하고 있다. 그 책이 바로『연지사적(蓮池事蹟)』이다. 『연지사적』의 저자는 당시 안산군수였던 권용정(權用正, 1844년 11월 6일~1848년 6월 25일 재임)이란 분인데, 이 분은 강희맹의 사위로서 관곡지를 소유하게 된 권만형(權曼衡)의 직계 후손이다.
연성정수장을 지나 물왕저수지쪽으로 가다보면, 비석 세 개가 길가에 서 있는데, 그중 1848년에 세워진 비석에 “군수권후용정영세불망비(郡守權侯用正永世不忘碑)”라 쓰여져 있다. 여기에 기록된 권용정이
바로 『연지사적』을 쓴 그 분이다.
권용정은 안산군수로 부임한 뒤, 조상의 사적이 깃든 연못(즉, 관곡지)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잡풀이 무성하여 연꽃을 못 살게 하는 것을 보고 1845년 봄에 부역에 동원된 백성들을 시켜 연못을 수리하게 하였다. 수리하고 나니 그 해 여름에 다행히 강희맹 선생이 심은 것과 같은 전당홍(錢塘紅) 두 줄기가
자라났다 한다.
권용정은 관곡지를 잘 관리하기 위해 다른 일체의 부역(賦役)없이 오직 관곡지만 관리하는 연지기 6명을 두도록 하고 이 사실을 경기도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연지사적』에는 그 여섯 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도문(李道文) ․황차돌(黃次乭) ․김춘복(金春福) ․황해금(黃海金) ․김만돌(金萬乭) ․김삼손(金三孫)이 그들이다. 이 여섯 명은 앞에서 말했듯이 일체의 부역은 물론 군역(軍役)과 환곡(還穀)도 면제받는 특혜를 받았고, 그것이 영구히 계속된다는 증명을 경기도 관찰사로부터 받을 정도로 관곡지 관리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만약 연지기에 결원이 생기면 해당 마을인 하중리의 백성중에서 충원토록 하였는데, 이들에게도 역시 같은 혜택을 주었다. 또 연지기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매를 쳤고(笞刑), 큰 죄를 지으면 쫓아내어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도록
한 조항도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처럼 특정한 곳을 관리하기 위해 지키는 사람을 두고, 혜택을 준 예가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기 때문에 『연지사적』에 기록된 이러한 내용은 비단 시흥시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쓰는 데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관곡지란 명칭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 및 관곡지의 현 소유주인 안동권씨 화천군파의 족보에는 모두 이 지역을 직곶(職串)으로 기록하고 있다. 실제 주민들도 ‘베실구지’, 또는 ‘벼슬고지’로 부르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벼슬(베실)’에 해당하는 한자(漢字)를 ‘직(職)’에서 ‘관(官)’으로, ‘구지(고지)’에 해당하는 한자(漢字)는 ‘곶(串)’에서 ‘곡(谷)’으로 바꾸어 표기함에 따라 ‘관곡지(官谷池)’ 란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